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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성’ 꼬리표 뗀 과민성장… 한약으로 염증 잡는다

    ‘신경성’ 꼬리표 뗀 과민성장… 한약으로 염증 잡는다

    국내 소화기 내과 외래 환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만성적인 복통, 설사, 변비 등을 동반한다. 생명에 직결되지는 않으나 환자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질환이다. 환자들은 통증이 발생할 때마다 진경제를 먹거나 지사제를 복용하는 식의 임시방편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최근 소화기 학회를 중심으로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의 장 점막 내 면역세포 활성화와 염증성 사이토카인 분비가 질환의 핵심 발병 기전이라는 병태생리학적 근거가 쌓이면서, 단순한 위장관 운동 조절을 넘어 염증 자체를 타깃으로 하는 치료제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왔다.

    이러한 가운데 강동경희대학교병원 한방내과 고석재 교수 연구팀은 소화불량과 위장관 질환에 널리 처방되어 온 전통 한약 '반하사심탕(반하, 황금, 황련, 인삼 등 함유)'의 장내 염증 신호 조절 기전을 규명했다. 연구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네트워크 약리학 분석(in silico)과 동물실험(in vivo)을 교차 검증하는 방식을 택했다. 실험동물에 반하사심탕을 투여한 결과, 장 길이 감소 및 통증 행동 증가 등 과민성대장증후군의 주요 지표가 유의하게 개선되었으며, 체내 염증을 유발하는 사이토카인 수치 역시 명확한 감소 추세를 보였다. 해당 연구는 약학 분야 국제학술지 '파마슈티컬스(Pharmaceuticals)'에 게재되며 객관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연구가 의료 소비자와 제약 업계에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첫째, 반복되는 과민성장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증상 억제'라는 대증 치료의 굴레를 벗어나, '발병 기전 차단'이라는 근본적인 치료 선택지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제공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스트레스 관리나 유산균 복용 정도에 머물렀던 관리 영역이 적극적인 항염증 치료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다.

    둘째, 이른바 '경험 의학'으로 치부되던 한의학의 유효성이 생명정보학과 현대 분자생물학적 검증을 통해 '근거 중심 의학'으로 편입되고 있다는 산업적 의미다. 다중 성분(Multi-component)으로 이루어진 한약이 다중 표적(Multi-target)에 작용하여 복합적인 염증 경로를 어떻게 억제하는지 네트워크 약리학으로 증명해 낸 것은, 향후 천연물 기반 신약 개발이나 양·한방 융합 치료 모델 구축에 있어 중요한 데이터베이스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고석재 교수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은 심리적 스트레스 외에도 장내 면역 반응과 염증이 복합적으로 얽혀 발생하는 질환"이라며 "이번 연구로 반하사심탕의 염증 조절 효과가 증명된 만큼 환자들에게 보다 효과적인 치료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인의 척박한 생활환경이 지속되는 한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 규모는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반복되는 배변 이상을 가벼운 꾀병이나 체질 문제로 방치하기보다, 장내 미세 염증이라는 기질적 원인을 인지하고 정확한 진단과 과학적 표적 치료를 병행하는 의료적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방내과_고석재 교수
    한방내과_고석재 교수

     

  • 외로움과 심리적 스트레스, 만성 질환과도 관련 있을까

    외로움과 심리적 스트레스, 만성 질환과도 관련 있을까

    이미지 출처 : Motion Elements
    이미지 출처 : Motion Elements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건강에 해로울까? 글쎄, 단순히 이렇게만 묻는다면 답하기 쉽지 않을 듯하다. 다만, 무엇이든 과도하면 해로울 가능성이 높다는 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다. 따라서 ‘과도한 외로움’은 건강 문제와 연결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실제로 외로움과 심리적 스트레스는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심한 스트레스는 명백한 건강 문제다.

     

    만성 질환자들이 느끼는 외로움

    최근 미국 대중심리학 매체 ‘사이콜로지 투데이’에서는 2024년 2월 호주 시드니 대학 연구팀이 수행했던 ‘외로움에 관한 연구’를 소개했다. 이 연구에서는 외로움을 가리켜 ‘개인이 자신의 사회적 관계에 대해 느끼는 주관적 경험’으로 정의했다.

    일반적으로 외로움이라 하면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외로움을 벗어나고 싶다면 그 자신이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는 식이다. 물론 실제로 외로움을 겪는 것이 개인적 요인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사회적 요인이 얽혀서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이유로 인해 외로움과 그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일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시드니 대학 연구팀은 특히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만성 질환은 본인의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인해 생기기도 하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났거나 유전적 요인, 불가항력적 환경에 의해 생기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만성 질환으로 인한 통증은 심리적 고립감(외로움)으로 연결될 수 있다 / 이미지 출처 : Motion Elements
    만성 질환으로 인한 통증은 심리적 고립감(외로움)으로 연결될 수 있다 / 이미지 출처 : Motion Elements

     

    스스로 위축되면서 외로움 느껴

    연구팀은 2020년 11월부터 2022년 4월까지 호주 내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19~83세 범위의 만성 질환자 40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이 앓고 있는 만성 질환의 종류도 만성 피로, 골관절염, 만성 요통, 다발성 경화증, 만성 폐쇄성 폐질환, 섬유근육통, 우울증 등으로 다양했다. 

    연구팀이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환자들은 만성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감추려는 경향이 있고, 이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나는 질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의) 친구나 동료로 바람직하지 않다”라거나 “내 질환을 감췄기 때문에 솔직한 관계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또한, 그들은 부득이하게 자신의 만성 질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더라도, 가급적 축소해서 말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만성 질환으로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그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 사람들이 부담스러움을 느껴 관계가 끊어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만성 질환자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외로움과 심리적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만성 질환으로 적잖은 영향을 받고 있어도, 겉으로 괜찮은 척 이야기하면서 심리적 스트레스가 생긴다 / 이미지 출처 : Motion Elements
    만성 질환으로 적잖은 영향을 받고 있어도, 겉으로 괜찮은 척 이야기하면서 심리적 스트레스가 생긴다 / 이미지 출처 : Motion Elements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움

    한편, 연구에 참가한 만성 질환자들은 “삶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질환을 겪지 않는 주위의 동료들이 더 많은 공부를 하거나,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가거나, 결혼이나 출산과 같은 굵직한 변화를 맞이하는 것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만성 질환을 앓고 있기 때문에 이런 유의미한 경험을 하는 데 제약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자신들은 제자리에 멈춰서 늘 같은 시간을 반복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 점차 자신과 멀어지게 되고, 어느 순간 자신을 잊어버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만성 질환자들은 자신이 ‘삶의 구경꾼과 같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며, 활발한 사회적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볼 때, 자신은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관객의 입장과 같다는 것이다. 이 또한 외로움과 심리적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연구팀은 인터뷰 결과를 토대로 주제적 분석(Thematic Analysis)을 실시했으며, 반성적 접근 방식(Reflexive Approach)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내용에서 의미 있는 주제를 찾아 분석하고, 자신들의 판단 과정을 지속적으로 의심하고 성찰했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연구는 40명이라는 소규모의 참가자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 깊이 면에서는 충분히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 사회에도 만성 질환을 앓으면서 주위에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통계에서 드러나는 각종 만성 질환 유병률을 보면, 누구든 주위에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한둘쯤은 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외로움과 심리적 스트레스

    연구팀은 사회에 흔히 존재하는 만성 질환자들이, ‘솔직하고 의미 있는 사회적 유대감이 부족한 상황’에 종종 노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만성 질환을 앓고 있더라도, 그들 역시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 따라서 이에 대한 개인의 인식부터 사회적 인식이 어떤지까지를 포괄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한편, 만성 질환 여부와 별개로, 외로움과 심리적 스트레스가 연관돼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 두 가지를 짚었다. 외로움이 전 세계적으로 시급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사회적 과제 중 하나라는 점, 기존의 외로움 관련 연구가 어느 단일 분야에서의 접근 방식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정신건강 문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앞서 연구팀이 이야기한 포인트는 만성 질환자들과의 인터뷰 내용으로부터 끄집어낸 것이지만, 사실 질환을 앓고 있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흔히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다. 

    이른바 ‘군중 속의 고독’과 비슷한 개념일 수도 있다.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지만,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관계가 부족하다는 데서 오는 외로움, 혹은 타인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면서 느끼게 되는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문제들은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고, 결과적으로 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문제가 된다.

    만성 질환 자체는 외로움의 직접적 원인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외로움과 심리적 스트레스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하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이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인식이 어떤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과 살아가면서도, 혼자만 다르다는 생각에 외로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 이미지 출처 : Motion Elements
    많은 사람들과 살아가면서도, 혼자만 다르다는 생각에 외로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 이미지 출처 : Motion Elements

     

  • 챗GPT의 가능성, “심리치료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챗GPT의 가능성, “심리치료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Designed by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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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은 인간의 심리를 치료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현재의 심리치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최근 논문에서 내린 결론이다.

     

    생성형 AI의 심리치료 능력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최근 오픈 액세스 저널 「플로스 정신건강(PLOS Mental Health)」에 발표한 연구가 있다. 심리치료 전문가가 작성한 답변과 챗GPT가 작성한 답변을 비교하는 실험에서, 챗GPT가 작성한 답변이 사람들로부터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AI가 ‘심리치료’를 할 수 있을까? 이는 생성형 AI가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 주목도 높은 이슈로 꼽혀왔다. 심리치료는 인간의 정신세계에 관한 지식과 그에 대한 고도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전문 영역이다. 인간의 복잡성은 인간 스스로도 아직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영역이다. 그런데 인간이 창조한 AI가 할 수 있을까?

    한때 ‘감정과 공감의 영역’은 AI가 넘어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이제는 그것도 철 지난 이야기다. 생성형 AI가 작성했는지, 실제 사람이 작성했는지를 밝히지 않고 평가했을 때, AI가 작성한 결과물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사례는 상당히 많다.

    오하이오 주립대학 연구팀은 800여 명 이상의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이러한 사례를 한 건 더 추가했다. 참여자들에게 총 열여덟 쌍의 커플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심리치료 에피소드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실제 전문 치료사가 쓴 것과 챗GPT가 쓴 것이 함께 섞여 있었다. 예상했겠지만, 참여자들은 누가 쓴 것인지를 거의 구분하지 못했다.

    인공지능이 감정을 '느끼지는' 못해도, 분석해서 이해할 수는 있다 / Designed by Freepik
    인공지능이 감정을 '느끼지는' 못해도, 분석해서 이해할 수는 있다 / Designed by Freepik

     

    인공지능의 충분한 잠재력

    세계적인 수학자이자 컴퓨터과학자로 꼽히는 앨런 튜링은 이미 오래 전, 1950년 논문을 통해 ‘인간이 쓴 답변과 기계가 쓴 답변을 구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1960년대에 개발된 초기 인공지능 프로그램 ‘엘리자(ELIZA)’도 자연어 처리 기술을 바탕으로 사용자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당시 엘리자는 입력된 문장을 분석하고 적절한 답을 생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지금의 생성형 AI는 그보다 더 고도화돼 있지만, 기본 메커니즘 자체는 비슷하다. 다만, 엘리자는 실제로 감정을 이해하거나 심리치료의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엘리자의 능력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해 있는 “AI가 심리상담사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이미 수십 년 전에 제기됐었다는 것이 포인트다.

    물론 그 당시에는 “불가능하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똑같은 결론인가? 그간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답을 찾는 과정을 거쳐왔고, 수많은 가설과 그에 따른 검증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폐기된 가설도 적지 않겠지만, 어찌됐든 그 당시와 똑같은 결론을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까운 예로, 지난 1월 말에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만 봐도 그렇다. 챗GPT로 하여금 감정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공감 반응’을 하도록 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작성하도록 했다. 그런 다음 이것을 인간이 작성한 답변과 함께 제시하고, 어느 쪽이 더 ‘잘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당연히 어느 쪽이 누가 작성한 것인지 알리지 않은 블라인드 테스트 방식이었다. 그 결과를 굳이 또 언급하지는 않겠다. 누가 봐도 예상할 수 있을 테니까.

    인공지능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인간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 Designed by Freepik
    인공지능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인간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 Designed by Freepik

     

    챗GPT의 심리치료 가능성

    챗GPT가 잠재력을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연구팀은 챗GPT의 답변을 분석해보았다. 그 결과 챗GPT가 생성한 답변은 우선 인간 심리치료사가 작성한 답변보다 ‘분량이 많은’ 경향이 있었다. 분량이 많다고 꼭 좋은 답변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분량이 많으면 일단 ‘구체적이다’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연구팀은 같은 조건에서 비교해보기 위해, 분량을 일정하게 통제하고 다시 답변을 요청했다. 그러자 챗GPT의 답변에는 인간 치료사보다 더 많은 단어(주로 명사와 형용사)를 사용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명사는 사람이나 장소, 특정 사물 등을 가리키고 설명할 때 사용한다. 그래서 보통 어떤 문장의 주어 또는 목적어로 많이 쓰인다. 형용사는 그 명사들을 꾸미는 역할을 주로 한다. 이는 어떤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수단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챗GPT의 답변은 대체로 ‘더 구체적인 문장을 쓴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문장이 구체적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의 전체적인 맥락은 물론 세부적인 사항까지 광범위하게 파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가 된다.

    구체적으로 작성된 답변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챗GPT가 기존의 심리치료 과정을 개선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보았다. 

     

    챗GPT의 가능성, 인정해야 빠르다

    생성형 AI가 의료에 있어서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증거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설령 부족함이 있더라도 기술의 연구와 발전이 계속되는 한 그리 오래지 않아 보완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실제 현장에 자연스레 도입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인간의 영역’을 따로 나눠서 지키려 노력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나의 영역 안에서 AI가 더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맡기거나,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을 인정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것도 보이지 않을까.

    이러한 논리를 토대로, 연구팀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기술 분야에 대한 이해력을 더 넓혀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 견고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정신건강 전문가가 나서서, 생성형 AI 모델의 심리치료 훈련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바꿔 이야기하면, 전문가들의 개입이 있건 없건 생성형 AI의 발전은 계속될 거라는 메시지일 수 있다. 한편, 책임감 있는 감독 없이 만들어진 AI는 오히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로 볼 수도 있다.

    연구팀은 “‘AI 열차’가 역을 떠나기 전에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라며 “우리의 연구로 인해 정신건강 전문가와 대중들이 ‘마땅히 해야 할 질문들’을 던져야겠다고 자극받기를 바란다”라고 이야기했다. AI 기술은 일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점점 삶에 녹아들 것이라는 점, 그렇기 때문에 마냥 거부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을 담은 메시지다.

    어떤 형태로든, 인공지능은 결국 '심리치료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될 것이다 / Designed by Freepik
    어떤 형태로든, 인공지능은 결국 '심리치료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될 것이다 / Designed by Freepik

     

  • ‘아보하’를 만들기 위한 소소한 행복 습관 3가지

    ‘아보하’를 만들기 위한 소소한 행복 습관 3가지

    Designed by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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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렌드 코리아’는 해마다 우리 사회의 주요 키워드를 주제로 다음의 트렌드를 내다보는 시리즈다. 다가올 2025년을 내다보는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도 10개의 키워드를 소개한 바 있다. 그중 눈에 띄는 키워드가 두 개 있었다. 바로 ‘아보하’, 그리고 ‘무해력’이다.

    ‘아보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를 줄인 것이다. 불행한 건 싫지만 너무 과하게 행복한 것도 꺼린다는 의미다. ‘무해력’ 역시 맥락 면에서는 비슷하다. 자극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들을 선호하는 트렌드를 말한다.

    이런 키워드가 트렌드로 다뤄지는 배경은 무엇일까? 아마 급격한 사회적 변화가 반복되는 와중에, 자신만의 가치관과 삶의 속도를 지키고자 하는 본능이 모인 결과는 아닐까? 한때 유행했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처럼, 사람들은 너무 과하지 않은 자그마한 행복에 목말라 있는 듯하다. 

    적당한 수준의 행복을 꾸준히 느낄 수 있는 삶은 우리네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그런 삶을 원한다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많다. 일단 그 중에서도 ‘멀리 해야 할 습관’들이 있다. 미국 대중심리학 매체 ‘사이콜로지 투데이’에서 다룬 내용을 재구성하여 ‘아주 보통의 하루, 그리고 소소한 행복을 만드는 습관’을 제안해본다.

     

    타인과의 비교는 그만

    개인적으로는 SNS를 거의 하지 않는다. 몇 번 시도한 적이 있지만 며칠이 채 되지 않아 그만뒀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나도 모르게 무수히 떠오르는 생각들로 인해 지쳤을 뿐이다. 

    팔로우해놓은 계정에는 수시로 그 사람들의 근황이 올라온다. 일상적인 소식들도 있지만, 보통은 국내·외 여행, 혹은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경험을 담은 것들이 많다. 그런 것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스스로의 상황과 자꾸 비교하게 되는 것을 통제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사이콜로지 투데이’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사회적 비교’라고 정의하며 ‘기쁨을 훔치는 습관’이라고 지적한다. 타인이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에 주목하게 되면 일시적으로 시야가 좁아지며 그것에만 주목하게 된다. 이를 테면 ‘해외여행’, ‘여유로운 삶’, ‘특별한 소유물’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자존감이 떨어지기 쉽다.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 대신, 가지지 못한 것이나 누리고 있지 못한 것에만 주목하게 되기 때문이다. SNS의 세상을 벗어나 마음을 가라앉히면 금방 깨닫게 된다. SNS의 세상은 철저하게 ‘큐레이팅’된 순간들만 모아놓은 곳이라는 것을.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면 스스로에게도 분명 즐거웠던 기억,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들을 중심으로 마음의 프레임을 다시 설정하도록 하자. 스스로 나만을 위한 큐레이팅을 해보는 것이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루종일 마냥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매우 소수다. 왜 그럴까? 일상은 대부분 무료하거나 또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시험 스케줄이나 업무 마감일정 등 일상생활에서의 압박은 물론, 하루를 보내기 위해 바깥을 돌아다니는 동안 마주하게 되는 소음과 예기치 못한 상황 등등.

    예민하게 받아들이면 하나하나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것들이며, 관심을 끄고자 하면 무료하고 지루한 것이 돼 버린다. 자기계발 목적으로 시작한 일기장을 펴더라도 도저히 쓸 내용이 없다. 특별하게 기억에 남은 무언가가 없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엇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그렇기에 ‘사이콜로지 투데이’에서는 묻는다. “익숙하게 들리시나요?”라고. ‘좋은 것’은 누군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좋은 것이라고 여기면 그것은 좋은 것이 된다.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사소한 것에도 감사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 더 큰 행복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는 내용이다. 행복을 느끼며 얻은 에너지로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더 상쇄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건강을 누릴 수 있다. 별일 아닌 일조차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 것들이 많다. 누군가의 노고로 만들어진 당연하지 않은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

     

    ‘내일의 나’에게 부탁하지 말 것

    농담처럼 그런 말을 쓰곤 한다. “내일의 내가 어떻게든 해주지 않을까?” 마음 속으로 생각할 때는 훨씬 많다.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 먹기는 쉽지만, 막상 시작하려면 귀찮음에 잠식돼 버리는 경우가 많다. 결국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행동으로 시간을 채울 때가 많다.

    커다란 목표나 꿈을 이루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다. 그를 위해 단계별로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좀 더 적다. 또 그중의 일부만이 계획을 나눠 꾸준히 할 수 있는 실천방안을 세운다. 결국 하루하루 실천하는 사람은 매우 소수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일의 나’에게 부탁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일의 나는 또 다시 그 다음 날의 나에게 부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앞선 두 가지에 비하면 훨씬 실천하기 힘든 항목일 것이다. 이는 좋은 것, 바람직한 것들의 공통점이다. ‘만나러 갈 때 좋고 만난 후에 후회되는 관계보다, 만나러 갈 때 별 생각이 없었지만 만나고 난 뒤 기분이 좋은 관계가 좋은 관계다’라는 말이 있다. 소통 전문가라 불리는 김창옥 대표의 말이다. 

    그의 말을 여기서도 응용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할 때는 즐겁지만 하고 나서 후회되는 일이 많다. 그런 일들은 이미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할 때는 힘들지만 하고 나서 성취감을 느끼는 일도 있을 것이다. ‘아주 보통의 하루’를 작은 행복으로 채우기 위해 조금 더 신경써야 할 일들이다.

  • 건강한 정신, ‘나만의 세계’를 벗어나야 한다

    건강한 정신, ‘나만의 세계’를 벗어나야 한다

    Designed by Freepik (https://www.freepi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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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아주 가까운 곳에 ‘정보의 바다’를 두고 살아간다. 항상 손 안에 있거나, 혹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것, 바로 스마트폰이다. 조그만 기기 하나로 우리는 세상의 대부분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직접 발로 뛰어야만 얻을 수 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정보가 온라인 네트워크에 흘러다닌다.

    원하는 정보가 있다면 검색을 통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세상. 이젠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이런 흐름 속에서 놓치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자신의 관심사와 성향에 따른 정보만 주로 접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당연한 일 아니냐고? 당연한 일은 맞다. 다만 이것이 생각보다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 문제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에 대해 미국 대중심리학 매체 ‘사이콜로지 투데이’에서 다룬 내용을 재구성하여 전한다.

     

    정보의 공급과잉 시대

    현대인들이 정보와 소식, 콘텐츠를 접하는 플랫폼은 대부분 인터넷에 기반한다. 인터넷을 통해 배포되는 뉴스와 콘텐츠는 빠르고 쉽게 퍼진다. 또한, 다양하게 변형되고 재구성되거나 재생산되기도 쉽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인터넷을 비롯한 뉴미디어는 기존 인쇄 미디어의 경쟁력을 깎아낼 수 있었다.

    정보생산자가 한정돼 있던 세상과 달리, 인터넷과 연결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정보생산자이자 소비자, 즉 ‘프로슈머(Prosumer)’다. 모든 인간이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퍼뜨릴 수 있게 되면서, 어느 한 개인이 정보를 소비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의 정보가 생산된다. 

    정보는 ‘공급과잉’ 상태가 됐고, 소비 속도와 생산 속도의 밸런스는 일찌감치 붕괴됐다. 누구나 정보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하나하나의 정보가 갖는 가치와 평균적인 품질이 낮아진 것도 문제가 된다. 명확하게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들도 섞여서 함께 퍼질 수 있게 됐으니까.

    아무튼 이런 시대적 특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정보를 직접 찾아나서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가만히 있어도 손 안에 있는 스마트폰을 통해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온다. 치밀한 ‘알고리즘’에 따라, 개인의 관심사와 취향, 성향에 맞는 정보들이 과도할 정도로 많이, 그리고 빠르게 배달된다. 그것을 소비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정보의 바다? No, ‘거품’에 갇힌 것일지도

    정보 버블(Information Bubble)이라는 단어가 있다. 어떤 개인이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 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의견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치우치는 현상을 말한다. 마치 거품(Bubble) 속에 갇힌 것처럼 폐쇄성을 갖고 다른 시각이나 관점으로 바라본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아예 접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거품방울 속에 있는 인간은 편안한 느낌을 받기 쉽다. 자신의 신념, 의견과 같거나 비슷한 것들을 위주로 접하며 ‘내가 옳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세계관이 공고해지며 더욱 더 폐쇄적이 된다. 이는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는 정보에 비중을 두고, 반대되는 정보는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과도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개인의 관심사와 취향, 성향에 따라 알고리즘이 파악한 뉴스와 콘텐츠가 배달되는 현상. 정보에 대한 균형을 잃고 ‘정보 버블’이 발생하도록 하는 핵심 배경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SNS나 동영상 플랫폼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 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사용자 또는 채널을 구독한다.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사용자나 채널을 일부러 팔로우 또는 구독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정보의 바다'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관점들을 가리는 '안개'일지도 모른다 / Designed by Freepik (https://www.freepik.com/)
    '정보의 바다'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관점들을 가리는 '안개'일지도 모른다 / Designed by Freepik (https://www.freepik.com/)

    인간은 누구나 기분 좋은 것에 끌리고, 기분 나쁜 것을 꺼려한다. 굳이 심리적 본능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세상의 모든 현상이 나에게 달콤할 수만은 없다는 것, 때로는 ‘씁쓸한 약’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알지만 굳이 찾아보지는 않는다. 이미 삶에서 충분히 많은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데, 인터넷에서 일부러 나와 다른 의견을 찾아보며 스트레스를 더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의도적이든, 불가항력적인 것이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정보 버블’에 갇히게 된다.

     

    메아리가 울리는 방, 심화되는 편 가르기

    ‘사이콜로지 투데이’에서는 이에 대해 ‘에코 챔버 효과(Echo Chamber Effect)’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본래 물리학에서 유래한 용어로, ‘소리의 반향 공간’을 의미한다. ‘메아리’라는 뜻의 에코(Echo)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어떤 공간 내에서 소리가 벽이나 다른 물체의 표면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현상을 말한다.

    이 용어를 미디어와 사회학에 적용할 경우, 특정한 의견이나 정보가 반복적으로 전파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자신이 서있는 ‘버블’ 안에서 알고리즘에 의해 엇비슷한 톤을 가진 정보와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현상이 최소화되는 현상,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관점과 신념이 강화되는 현상을 부른다. 그렇게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확고하게 다진 사람이 늘어나게 되면, 사회는 더욱 경직된다. 서로 다른 편으로 갈라져 분열되고 다투기 쉬워진다.

    타협하지 않는 개인, 심화되는 편 가르기,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 여기서 더욱 중요한 점은 이런 환경으로 인해 개인의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이 가해진다는 것이다.

    편향된 생각은 흑백논리와 극단적 편 가르기로 이어지기 쉽다 / Designed by Freepik (https://www.freepik.com/)
    편향된 생각은 흑백논리와 극단적 편 가르기로 이어지기 쉽다 / Designed by Freepik (https://www.freepik.com/)

     

    편향된 시각, 정신건강 문제를 부른다

    정보 버블과 에코 챔버의 반복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양한 관점’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만 보고 들으며, 자신만의 세계에 살게 된다. 이렇게만 보면 별로 문제가 될 게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이와 더불어 살다보면 서로 말을 나누고 의견을 교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자신만의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굳이 정치적 성향이나 개인의 가치관 같은 묵직한 주제까지 갈 필요도 없다. 편향에 물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바라보거나,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적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당연히 관계 차원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으로 정보의 편향은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옳은 줄 알았던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 그로 인한 혼란이나 좌절, 정서적 고통, 사람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게 되는 스트레스, 자신이 생각해본 적 없던 정보를 접했을 때 느끼는 불확실성, 그에 대한 짜증과 두려움 등의 부정적 감정까지. 정신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버블’로부터 빠져나오려는 의지

    정보 버블으로부터 기인하는 정신건강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창구를 다양하게 가져가면 된다. 2021년 수행된 한 조사에 따르면 ‘최소 5곳의 서로 다른 출처’에서 정보를 소비하면 해당 주제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보일 가능성이 50% 더 높게 나타났다.

    귀찮은 일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다. 올바른 정보를 얻기 위한 일이고, 더 나아가 자신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일이다. 다양한 생각을 지닌 조직과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가 되기 위해 마땅히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 해결책을 제시한다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각’이다. 본인이 정보 버블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빠져나오려는 의지를 갖지 않으면 그 어떤 해결책이든 무용지물이다. 반대로 본인이 의지만 있다면 해결책은 굳이 말해줄 필요가 없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것들이니까.

    자신감과 오만은 분명 다르다. 혹시 '나만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 Designed by Freepik (https://www.freepik.com/)
    자신감과 오만은 분명 다르다. 혹시 '나만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 Designed by Freepik (https://www.freepik.com/)

     

  • 정신건강을 위해, ‘낙관적 현실주의자’가 되자

    정신건강을 위해, ‘낙관적 현실주의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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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igned by Freepik (https://www.freepik.com/)

    ‘요즘은 어렵고 불확실한 시대’라고들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으로 변한 데는 세상이 시끄럽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음, 그렇지”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은 말이지만,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긴 하다. 따지고 보면 어렵지 않은 시대, 불확실하지 않은 시대가 있었을까? 

    유행하는 소설이나 웹툰, 드라마에서처럼 과거로 돌아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미리 알고 있는 게 아닌 이상, 현재는 어렵고 불확실한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니 ‘불확실한 현재’라는 건 사람들을 부정적, 비관적으로 만든 원인으로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유명한 옛 이야기인 ‘맹모삼천지교’에서도 다뤄진 것처럼,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부정적인 뉴스가 마음을 부정적으로 만든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낙관적인 태도’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미국 대중심리학 매체 ‘사이콜로지 투데이’에서 최근 ‘불확실한 시대의 낙관적 태도’를 주제로 게재했던 내용을 재구성하여 전한다.

     

    ‘어그로’가 더 많은 관심을 끈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의 모습과 딴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복잡한 심리적 메커니즘이 필요한 영역이자 ‘학술적 연구’의 영역이므로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분명한 현상 하나는 짚어볼 수 있겠다. 바로 ‘부정적 행동(negative)’이 더 관심을 끌기 쉽다는 것이다.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무례한 언행’,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어그로’를 끄는 행위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쉽다는 이야기다. 

    한 예로, 캐나다 위니펙 대학에서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 의회 의원들이 게시한 SNS 게시물을 분석한 적이 있다. 의원들이 작성한 게시물 중, 타인을 칭찬하는 내용보다 무례한 표현을 쓴 내용이 더 많은 ‘좋아요’와 ‘공유하기’를 받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런 현상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니까.

    이와 비슷한 작업을 2021년 뉴욕 대학에서도 진행한 바 있다. 270만 개 이상의 페이스북과 엑스(과거 트위터) 게시물을 분석한 결과,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메시지’가 긍정적이거나 중립적 성향의 메시지보다 2배 이상 더 자주 공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 비해 ‘온라인 매너’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강해진 경향도 분명 있다. 다양한 경로의 온라인 커뮤니티 서비스를 살펴보면, ‘상호 예의’를 기본 공식처럼 강조하고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분명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개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온라인 채널, 콘텐츠에 따라다니는 댓글창 등에서는 여전히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메시지들이 눈에 띌 때가 많다. 어그로를 끄는 방식도 다양해서, 까딱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려들기도 한다. 오죽하면 ‘어그로에 관심을 주지 말라’는 메시지까지 돌아다닐까.

     

    부정적 뉴스가 눈에 잘 띈다

    그렇다면 뉴스는 어떨까? 이 대목에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은 부정적인 뉴스와 긍정적인 뉴스, 어느 쪽을 더 많이 보는가?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 없다. 답은 이미 나와있기 때문이다. 부정적 뉴스가 긍정적 뉴스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이는 어느 개인의 잘못이 아닌 인간의 공통적 성향이다. 인간은 위험요소, 혹은 사건사고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에게 해가 될지 모를 요소를 경계하며, 이를 사전에 확인하고 대비하려는 심리적 방어기제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뉴스의 생산 환경 변화가 더해졌다. 뉴스 공급 채널이 수없이 많아진 요즘이다. 과거에는 몇 개의 지정된 미디어가 공신력을 차지하고 뉴스를 공급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인터넷 신문, 유튜브 채널 등을 포함해 무수한 경로로 소식이 만들어지고 퍼져나간다. 그 와중에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가짜 뉴스’도 성행한다.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 중세 봉건시대가 따로 없다. 

    뉴스 생산자인 미디어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자극적인 제목은 거의 필수다.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 공격적인 멘트 등이 들어가면 홀린 듯 클릭하게 되는 인간의 심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사람들의 대화는 어떨까? 친구들을 만나서 근황을 주고받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부정적인 뉴스 내용, 자신이 일상에서 경험한 사건사고나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이른바 ‘뒷담화’를 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즉, 부정적 뉴스는 정보 전달에 더해 사회적 상호작용, 개인의 심리적 반응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수많은 뉴스 채널 속에서 ‘AI 알고리즘’을 통해 의식하지 않고 있던 자신의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는 요즘이다. 당신의 유튜브, 뉴스 채널의 알고리즘을 살펴보라. 긍정적인가? 아니면 부정적인가?

     

    그럼에도 ‘더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이유

    온갖 부정적인 현상이 활개를 치고 있음에도, 그로 인해 ‘세상이 망하려나 보다’라는 자조적 농담을 주고받는 일이 있음에도, 낙관적 태도를 가질 이유는 분명 있다. 일단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다. 긍정적 태도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행복감을 늘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심리적 회복력을 높이고, 일상에서의 ‘개인적 행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낙관적 현실주의’라는 개념이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되,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2015년 발표된 적 있는 한 연구에 따르면, 낙관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더 질 좋은 결정을 내리고, 심리적 회복력 또한 뛰어나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또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발표됐다. 낙관적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불안과 우울증 수준이 낮았다는 내용이다. 그 누구도 긍정적인 전망을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낙관적 태도가 정신건강을 유지하거나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다.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누가 봐도 암울한 현실을 그대로 인식하면서 어떻게 낙관적 태도를 가질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 ‘사이콜로지 투데이’에서는 미국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약 100여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조직에서 나타나는 성별 격차의 현실을 약 100여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어떤지를 보라고 이야기한다.

    해당 기고를 작성한 이탈리아 루이스 비즈니스 스쿨의 리더십 분야 부교수 앤서니 실라드 박사는 2022년 4월 「노동경제학 저널(Labor Economics)」에 실린 연구결과를 인용하며 “자녀가 없는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는 사라질 것이라는 증거가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간단하다. ‘현실을 정말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실라드 박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기고를 마무리한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미 많은 것들이 이루어졌고, 우리는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 다이어트가 너무 힘들다면, ‘유전적 요인’일 수 있어

    다이어트가 너무 힘들다면, ‘유전적 요인’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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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igned by Freepik (https://www.freepik.com/)

    ‘누가 어떤 방법으로 몇 kg를 감량했다더라. 그런데 두 달 밖에 시간이 안 걸렸다더라’ 

    다이어터의 한 사람으로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종류의 이야기들이다.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리즘에게 들켜버린 덕분에, 체중 감량에 관한 콘텐츠는 어떤 식으로든 내게 도달하곤 한다. 특히 연예인들이 어떤 식단, 어떤 운동으로 어느 정도 감량했다는 이야기는 적어도 이틀에 한 번 꼴로 보는 듯하다. 

    누군가에게 효과적이었던 다이어트 방법이, 나에게도 효과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오늘도 하루하루 묵묵히 운동을 위해 집을 나선다. 하루 고작 30분에서 1시간 남짓이지만, 꾸준히 하는 것만이 지름길이라는 격언을 되새기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어들 기미가 없는 체중계를 보며 한숨을 쉰다. 아니, 때로는 도리어 체중이 늘어날 때도 있다. 매일 치킨을 먹는 것도 아니고, 주에 3~4회씩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다. 남들보다 좀 더 많이 먹는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밥 두세 그릇에 고기 3~4인분을 먹어치우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효과는 지지부진이다. 이쯤 되면 클리닉을 찾아가봐야 하나 고민이 된다.

     

    체중도 유전의 영향을 받는다

    ‘체질’이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글자 그대로 보자면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특성을 나타낸다. 신체 구조, 체형, 대사 속도, 면역력과 같은 것, 혹은 성격이나 감정, 특정 상황에서의 반응이나 행동방식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쉽게 쓰는 이 단어는, 유전에 의한 선천적 영향과 환경에 의한 후천적 영향으로 만들어지곤 한다. 체중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체질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체중 감량이 더딘 것 역시 유전적 요인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본인처럼 체중 감량이 유독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유전적 요인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관련된 연구들에 따르면, 체중과 지방 분포, 대사 속도는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유전자는 지방 세포의 크기와 수를 조절하는 데 영향을 미치며, 또 어떤 유전자는 대사 속도에 영향을 미쳐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전혀 다른 체형이 되는 데 기여한다.

    이는 다이어트 방법과 그에 따른 효과에도 큰 차이를 부른다. 누군가는 특정 식단이나 운동법으로 빠른 시일 내에 큰 감량 효과를 얻는다. 반면 누군가는 똑같은 식단과 방법을 따라도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기도 한다. 

     

    똑같은 8주 운동에 최대 10kg 감량 차이

    영국 에식스 대학의 연구팀은 20~40세의 남녀 38명을 모집해 소규모의 운동 연구를 실시했다. 모든 참가자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무작위로 나눠 두 개의 그룹을 만들었다. 하나는 8주 간의 지구력 프로그램(운동)을 수행할 그룹, 다른 하나는 대조를 위해 본래의 일상생활을 따를 그룹이다.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기 전, 모든 참가자는 12분 동안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를 테스트한 다음, 현재 체중 및 체질량 지수(BMI)를 측정했다. 초기 체력 수준을 측정하고 연구 기간 동안 어느 정도 변화를 보이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측정 결과, 모든 참가자는 달리기 능력, 체중, BMI가 비슷한 수준이었다.

    운동 그룹은 주중 하루를 정해서, 20~30분씩 3번을 달리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8주 간의 프로그램을 실시한 후, 운동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평균 2kg 정도의 체중을 감량했다. 대조군은 평균 2kg 정도 체중이 늘었다. ‘고작 2kg’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주 1회 운동에 식단을 전혀 바꾸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성과라고 봐야 한다.

    문제는 이 2kg라는 성과가 ‘평균’이라는 것이다. 실제 운동 그룹의 개별 성과에서는 상당한 편차가 있었다. 가장 적게 감량한 참가자와 가장 많이 감량한 참가자의 성과 차이는 무려 10kg에 달했다. 표본의 수가 많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면 실제로 대부분의 참가자는 2kg보다 적게 감량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편차다.

     

    ‘특정 유전자’가 감량 정도에 기여

    연구팀은 8주 프로그램이 끝난 후 DNA 검사 키트를 활용해 개인별 유전적 특성을 평가했다. 비슷한 수준이었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그 결과값의 편차가 너무 크다. 연구팀은 이를 두고 ‘체중 감량과 유전자 사이의 상관관계가 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의 유전 특성을 분석한 결과, 체중, 신진대사, BMI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의 수가 많을수록 체중 감량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는 점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PPARGC1A 유전자는 운동 중 신진대사와 지방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데 기여한다. 8주 운동으로 1.5kg 이상을 감량한 모든 참가자는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그 이하를 감량한 사람은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연구팀은 2021년 「플로스 원(PLOS ONE)」에 게재된 논문을 인용하며, 자신들의 연구 결과가 해당 논문과 같은 결론을 가리키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위 논문은 개별 유전자와 체중 감량 사이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췄다. 에식스 대학 연구팀의 연구는 14개의 다른 유전자가 지구력 운동을 통한 체중 감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스스로에게 가혹해지지 말라

    결론은 간단하다. 어떤 사람들은 체중 감량이 더 쉬운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지인 중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은 체중 감량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더 많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른바 ‘살이 잘 빠지지 않는 유전자’를 타고났다고 해도, 이미 타고난 것을 바꿀 도리는 없다. 전문 클리닉에 가서 자신의 유전자를 확인한다 해도,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가슴에 손을 얹고 다이어트를 위해 최선을 다해보았노라 생각하는가? 그럼에도 효과가 너무 더디다고 느꼈는가? 그렇다면 아마도 당신의 잘못이 아닌 유전자의 잘못일지도 모를 일이다.

    본인 역시 ‘살이 잘 안 빠지는 사람’ 중 하나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해지지 말라는 것. 다이어트가 유전적인 요인과 관련이 있음을 이해하는 것, 올바른 다이어트 방법을 찾는 것, 그리하여 적절한 수준의 체중을 유지하는 것. 모두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다이어트라는 것은 우리 삶의 일부이지, 모든 삶을 결정하고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체중 감량과 관리는 평생 가져가야 할 숙제와 같다. 그 과정은 스스로를 이해해나가는 여행길과 같다. 남들이 정답이라 말하는 방법이 아닌, ‘나에게 잘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길인 것이다.

    삶의 속도는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그 삶의 일부에 불과한 다이어트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의 숫자 때문에 침울해져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해지지 말자. 오늘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면 충분하다.

  • 늘어나는 ADHD,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는가

    늘어나는 ADHD,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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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추세와 함께 ADHD 진단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 비하면 많은 사람들이 ‘ADHD가 무엇인지 안다’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알고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ADHD라는 단어를 알고, 그것이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장애’라는 질환의 약자라는 것을 아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단지 단어를 아는 것만으로 그 질환을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미성년자 ADHD 환자 수는 약 11만8천 명이며, 성인 ADHD 환자 수는 약 8만8천 명이다. 전체 인구 중 대략 20만 명이 ADHD 환자라는 의미다. 2019년 7만여 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세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이 정도면 주위에 한두 명쯤 ADHD 환자가 있을 수도 있다. 아직도 정확히 모르고 있다면, 이제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ADHD는 정확히 무엇이며, 어떤 증상을 보이는 것일까? 왜 최근 들어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을까?

     

    ADHD는 무엇인가?

    주의력 결핍, 그리고 과다행동. ADHD의 질환명에 명시돼 있다. 주의력 결핍이란 흔히 ‘집중력 부족’이라는 말로 풀이된다. 여기에 더해,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차근차근 정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증상이 나타난다. 세부적인 사항을 무시하거나 기억하지 못해, 흔히 말하는 ‘디테일’에서 약한 경향을 보인다.

    과다행동은 비교적 잘 드러난다.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한다거나, 말이 지나치게 많다거나 다른 사람의 대화에 끼어드는 등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다소 정숙해야 하는 분위기에서도 과도한 활발함을 보이는 경우도 포함된다. 즉각적으로 반응하거나 행동으로 옮기는 충동성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쯤 되면 ‘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주위에서 한 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혹은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너무 흔한 증상이라서 모르고 지나쳤던 건 아닐까 싶을 수도 있다.

    일단 과도한 걱정은 접어두자. ADHD의 증상들은 일반인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는 것들이다. 보통 정신질환의 대표 증상들은 일반인에게서도 조금씩은 나타나는 증상들인 경우가 많다. 편집증이나 강박증이 대표적이며, 우울이나 불안 또한 자연스러운 감정의 한 종류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증상들이 과도하게 심각한 경우에만 질환으로 진단한다. ADHD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국제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는 DSM-5(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 제5판)에 명시된 진단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ADHD에 해당한다.

    주의력 결핍, 과도하고 충동적인 행동들을 표상하는 항목들 중 일정 기준 이상을 충족해야 ADHD로 진단한다 / Designed by Freepik (https://www.freepik.com/)
    주의력 결핍, 과도하고 충동적인 행동들을 표상하는 항목들 중 일정 기준 이상을 충족해야 ADHD로 진단한다 / Designed by Freepik (https://www.freepik.com/)

     

    ‘색안경 감소’로 환자 수 급증?

    201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ADHD 유병률은 대략 5~7% 수준을 유지해왔다. 성인 ADHD 유병률 또한 3~5% 수준이다. 미국은 2022년 기준 11.4%로 알려졌으며, 스웨덴의 경우는 남자 어린이 10.5%, 여자 어린이 6%라는 통계를 제시했다. 널리 알려진 선진국의 추세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그렇다고 해도 20만 명이라는 환자 수는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수준이다. 5년 전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세계 각국에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가장 흔한 이유로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들 수 있겠다. 다른 정신질환들이 으레 그렇듯, ADHD 역시 ‘사회적 낙인’의 대상이었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여전히 그런 편견과 선입견은 남아있지만, 과거에 비하면 훨씬 덜해진 것이 사실이다.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정식 진단을 받고 치료를 결심하게 하는 배경이다.

    이런 이유라면 차라리 다행이라 할 것이다. ADHD 진단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DSM-5의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환자다.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있는 증상이 없는 일이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꽁꽁 숨겨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보다, 드러내서 치료를 받는 편이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에 더 이득이다.

     

    학습 환경의 빠른 변화, 과부하 유발

    ADHD는 본래 어린이나 학생들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그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교육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ADHD의 원인일 수 있다. 중년 이상의 성인들은 물론, 현재 청년에 해당하는 성인들 관점에서 보더라도 어린이들의 학습 환경은 낯설다. 한 반의 학생 수, 디지털 기기의 보편화 같은 물리적 환경 뿐만 아니라 교수법과 학습법, 교육에 사용되는 콘텐츠 등이 과거와는 다르다.

    이러한 변화는 ‘학습 환경’이라는 개념 자체를 바꿔놓았다. 어린이와 학생들은 단순히 책과 노트, 필기도구를 주로 사용했던 과거와는 달리,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ADHD의 특성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서도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그런 특성을 몇 가지 가지고 있는 학생이라면? 환경 적응이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이런 학습 환경은 지속적으로 변한다. ‘기술의 변화 속도는 날이 갈수록 빨라진다’라는 말이 있듯, 실제 생활양식 자체가 더욱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학습 환경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어린이와 학생들 사이에서 ADHD가 늘어나는 이유는,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과부하를 일으킨 결과일 수 있다.

    다양화된 학습환경도 아동 ADHD의 원인일 수 있다 / Designed by Freepik (https://www.freepik.com/)
    다양화된 학습환경도 아동 ADHD의 원인일 수 있다 / Designed by Freepik (https://www.freepik.com/)

     

    심화된 다양성, ‘성과 압박’에 대한 스트레스

    성인들의 경우는 어떨까? 사회생활 전선에 뛰어든 성인들은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 된다. 가장 보편적인 ‘사회적 기준선’이라 하면, 직장에서의 ‘성과’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익숙하고, 한 직장에서 연공서열에 따라 대우를 받는 사례가 비교적 흔했다. 현재는 어떤가?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흐릿해졌고, 스스로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시대다. 이 과정에서 ‘성과’는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다.

    게다가 현대사회는 ‘다양성’이 심화되고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무척 많기 때문에, 때로는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무수한 선택지 사이에서 수많은 기회비용을 감수해가며 스스로 ‘성과’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압박과 스트레스. 이 또한 ADHD를 유발하는 한 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복잡한 현대사회에 동반되는 여러 문제 중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정신건강이 사회 전체에 걸친 문제로 대두되는 현실과도 연결돼 있다. 실제로 ADHD는 우울증, 불안장애, 강박장애, 학습장애 등 여러 정신건강 문제와 동반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 또한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왜 ADHD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모든 정신질환이 그렇듯, ADHD 역시 치료되지 않으면 점점 심각해질 수 있다. 주의력이 부족하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잃어간다. 충동적인 행동은 지나고 난 뒤 후회를 남길 가능성을 높인다. 과도한 활동성은 사회생활 및 대인관계에서 트러블을 일으킬 우려를 낳는다.

    이들 모두는 개인의 삶의 질 문제와 직결된다. 자신의 삶에서 성취감을 느끼기 어렵고, 후회할 일이 많으며, 사람들과 다투고 감정 소모할 일이 많아진다면 누구라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사회적으로 보아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개인 간의 원활한 소통과 협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트러블이 잦아진다면 당사자 외에 주변 사람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부정적인 상황을 목격하면서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ADHD는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이는 나이에 상관없이 공통된 사항이다. 다만, 아동의 경우 학업 성취도와 교우 관계,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도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 또한, 어린 시절의 ADHD가 치료되지 않으면 성인이 돼 가는 과정에서 더욱 심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ADHD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결과적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이는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ADHD에 대한 정확히 이해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올바른 인식이 확립될 수 있기를 바란다.

    ADHD가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회적 인식과 관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Designed by Freepik (https://www.freepik.com/)
    ADHD가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회적 인식과 관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Designed by Freepik (https://www.freepik.com/)

     

  • 소셜 미디어는 내가 원하는 ‘커뮤니티’가 아니다

    소셜 미디어는 내가 원하는 ‘커뮤니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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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오래 전부터 인간은 서로 교류하고 협력해 왔으며, 그를 통해 ‘연결’돼 왔다. 작은 사회에서 살아가던 인간들은 점점 넓은 세상을 알게 됐고, 이제는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와 연결된 것이나 다름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외롭고 고독하다. 예전보다 더 풍부한 연결이 가능해졌지만, 예전보다 더욱 정신 건강은 좋지 않아졌다. 연결이 너무 과도해졌기 때문일까? 적당한 수준의 연결만 있어도 됐을 텐데, 감당할 수 없는 연결이 돼 버렸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면 ‘연결된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인간의 사회성, 현대 사회의 연결 방식, 그리고 현대인들의 정신 건강 문제. 이들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주제이긴 하지만, 그에 대해 조심스레 의견을 더해본다.

     

    ‘건강한 커뮤니티’란 무엇인가?

    제대로 기능하는 커뮤니티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커뮤니티 역시 때때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그런 점에서는 회사와 비슷하다. 다만 명백한 차이가 있다. 회사와 달리 커뮤니티는 보통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두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교류와 소통, 관심사 공유, 인맥 형성 등을 목표로 하게 마련이니까.

    커뮤니티에서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기본적으로 ‘사람’ 그 자체로 본다. 그의 나이, 능력, 사회적 지위 같은 것들은 차차 알게 되는 것들이다. 물론 그것들을 알게 된다고 해도, ‘동등한 사람’이라는 본질은 같다. 각자의 성향과 호불호에 따라 개인과 개인의 관계는 달라질 수 있지만, 커뮤니티 구성원이라는 측면에서는 차별받지 않는다. 이것이 커뮤니티의 첫 번째 원칙이다.

    여기에서 두 번째 원칙도 파생된다. 모두가 동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똑같이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이 때문에 제대로 기능하는 커뮤니티에는 ‘보편적 예의’가 존재한다. 새로운 구성원이 참여하더라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을 맞이하듯 기본적인 배려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 가지 이상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원칙은 ‘협동 강화’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는 서로에게 친화적인 태도를 기본으로 한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분열을 조장하거나 규칙을 위반하는 등의 행동을 비난하고 처벌하려는 태도를 지향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원칙들이 다소 생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사회 심리학, 사회적 자본 이론 등 학술 연구에 근거를 두고 있는 내용이다. 사회 심리학에서는 존중과 예의가 인간 관계에서 긍정적 상호작용을 이끌어낸다는 견해를 내놓는 연구가 많다. 사회학자이자 정치학자인 로버트 퍼트넘은 저서를 통해 ‘신뢰와 협동의 원칙이 건강한 커뮤니티 형성에 필수적’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만인과 연결된 시대, ‘군중 속 고독’

    현대인들은 그야말로 ‘초연결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자그마한 스마트 기기 하나만 있으면 언제든지 전 세계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연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전적으로는 연결이라는 말이 맞겠지만, 정말 의미 있는 연결이라 할 수 있을까?

    전례 없는 규모로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환경임에도, 현대인들은 외롭고 고독한 경우가 많다. 2017년 발표된 바 있던 한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수록 자신을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국리서치에서도 2018년, 2023년 각각 1,000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개인이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 정기 여론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2018년에는 77%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한 반면, 2023년에는 72%가 답했다. 약간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굳이 통계 수치를 인용하지 않아도 될 문제다. 소셜 미디어에서 이루어지는 ‘팔로우’와 같은 형태의 ‘느슨한 연결’로부터 인간적인 관계를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가 인간의 사회성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될 수 없다는 반증이다. 그야말로 ‘군중 속 고독’이라는 역설을 적용할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소셜 미디어는 커뮤니티가 아니다

    소셜 미디어는 커뮤니티가 되기 어렵다. 만약 교류와 소통 등의 목적으로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고 있다면, 명확히 새겨둬야 할 대목이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커뮤니티의 원칙들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상호 존중하며, 집단적 협력을 지향하는 모습. 어떤가? 얼핏 봐도 소셜 미디어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 덕목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물질적 과시를 통한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는 모습,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필터링 없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 모습, 예의 있고 우호적인 태도보다 소위 ‘어그로’라 불리는 행위가 더 많은 관심을 받기도 하는 모습 등등. 

    그렇다면 소셜 미디어가 현대인들의 정신 건강 문제를 확대시키고 있는가? 소셜 미디어가 단 하나의 주범은 아니겠지만, 정신 건강 문제가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 적지 않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물론, 사람 나름이고 이용하기 나름이다. 소셜 미디어는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사용하기에 따라 폐쇄적인 성향의 울타리를 만들 수 있다.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고 서로가 잘 지키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건강한 커뮤니티’의 조건에 부합하는 집단을 만들 수 있다.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초월한 교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소셜 미디어의 순기능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소셜 미디어, 정신 건강에 해가 되고 있지 않은가?

    소셜 미디어를 ‘악(惡)’으로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왜 사용하는지’를 분명히 할 것을 권하고 싶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하니까? 그럴 수 있다. 예를 들어, 내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인스타그램 DM으로만 소통한다면, 그들과 소통하고 교류하기 위해서라도 인스타그램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 친구가 있다고 해서 그 친구와 연락할 방법이 없지는 않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휴대폰이 없다고 해서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싫다면 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고 난 후, 즐거움을 느낀다면 괜찮다. 당신은 소셜 미디어를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를 사용한 다음 허탈감, 박탈감, 우울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면, 부디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소셜 미디어는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대한 플랫폼이다. 개인의 힘으로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만약 그것으로 인해 행복하지 않다면,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 음식, 즐겁게 먹어야 건강에 ‘더’ 좋다

    음식, 즐겁게 먹어야 건강에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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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에게 있어 음식은 어떤 의미인가? 단순히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수단인가? 아니면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분명한 요소 중 하나인가? 당연히 그 외의 어떤 대답이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이 질문에 어떤 답을 하는지와 무관하게,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 정도는 있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거라 예상해본다.

    매 끼니마다 원하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 먹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아이러니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의 즐거운 느낌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다이어트의 중요성을 높게 매긴 나머지, 매번 식사를 고통스러운 ‘끼니’로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 어떤 필요에 의해 짧은 기간 진행되는 것이라면 괜찮다. 하지만 몇 달 이상 길게 지속해야 한다면? 혹은 기약없이 계속해야 한다면? 글쎄, 아마 ‘삶의 질’이 낮아졌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음식을 먹을 때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장기적으로도 건강에 좋다. 당신의 요즘 식사는 어떠한가? 매 끼니가 즐겁고 건강상 큰 문제가 없다면 그것은 매우 축하할 만한 일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글의 내용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즐겁게 먹으면 영양학적으로도 양호해

    생리학적으로, 음식에 대한 즐거움은 크게 두 군데에서 발생한다. 답을 예상했는가? 그렇다. 입, 그리고 뇌다. 입은 음식을 씹으면서, 그리고 ‘맛’을 감지하면서 만족감을 느낀다. 뇌는 이에 대해 ‘보상 시스템’을 활성화함으로써 도파민을 분비한다.

    과거 2011년에 수행됐던 한 연구에서는, 비만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과식의 원인을 조사한 바 있다. 당시 비만자들은 ‘도파민 민감성’이 저하돼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 바 있다. 즉, 음식을 먹었을 때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더 많은 음식을 먹게 됐고, 그로 인해 비만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었을 때 도파민 분비가 충분히 이루어지면, 소화 및 대사 작용에도 이득이 된다. 음식을 먹을 때 즐거움을 느끼면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된다. 이때 위장 운동이 활발해지고 소화 효소가 더 잘 분비되며, 소화기관에 혈류가 집중된다. 이는 섭취한 음식을 더욱 꼼꼼하게 분해해 소화시킬 수 있게 하며, 영양소 흡수를 극대화함으로써 같은 식사라도 더 나은 효과를 얻게 해준다.

    실제로 2015년 발표됐던 한 연구에서는 500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식사를 즐겁게 했는지 여부를 설문으로 작성하도록 하고, 이들의 영양 상태를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식사를 즐겁게 한 사람들일수록 영양 측면에서 더 양호한 상태에 있다는 결론을 내놓은 바 있다. 

     

    음식은 단순한 ‘연료’가 아니다

    음식을 대할 때 철저하게 영양소와 그 기능 측면에서만 접근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음식은 그저 몸을 움직이고 지탱하기 위한 ‘연료(Fuel)’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기계와 큰 차이점이 없어진다.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 글쎄, 요즘은 잘 만들어진 기계(AI)도 생각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던가.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즐거운 식사’라는 건 단순히 신체의 물리·화학적 기능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서적, 즉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아플 때 가족이나 연인, 친구가 만들어주거나 사다주는 죽 한 그릇, 특별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간식 같은 것도 모두 ‘즐거운 식사’와 연결돼 있다.

    객관적으로 뛰어난 맛을 가진 음식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똑같은 음식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음식일 수도 있다. 반면 또 누군가에게는 냄새만으로도, 혹은 한 입 머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음식일 수도 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먹기’와는 달라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과 ‘즐겁게 먹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이른바 ‘정서적 섭식’이라 부르는 행위는, 감정을 먼저 느끼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즐겁게 먹는 것’은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을 떠올리는 것, 그리고 먹는 행위의 순간순간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미묘한 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다면, 보다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음식을 먹기 전에 이미 어떤 감정이 떠올라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당장 그 음식을 먹어야겠어’라는 생각이 든다면, 어떤 감정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먹고 난 후의 기분이 어땠는가?

    그것으로도 명확하게 판별되지 않는다면, ‘음식을 먹은 후’의 기분에 집중해보자. 식사 후 포만감이 느껴지는 거야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포만감은 즐거움과 함께 오는가 하면, 어떤 포만감은 죄책감과 함께 찾아온다.

    ‘소통 전문가’라 불리는 김창옥 대표의 말 중에 ‘인간관계의 좋고 나쁨은 그 사람을 만나고 난 뒤에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에 따라 정해진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의 기분이 좋고 만난 후의 기분이 나쁘다면, 그 관계는 좋은 관계가 아니라고 말한다. 반대로, 만나러 갈 때는 별로였지만 만난 후의 기분이 좋았다면, 그 관계는 유지해야 할 관계다.

    둘은 서로 다른 사례지만, 그 기저에 깔린 원리는 같다. 행하기 전의 감정도 물론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행한 뒤의 감정’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무언가 이득을 보았는지, 손해를 보았는지를 정하는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식단 관리, 너무 극단적이면 오히려 해롭다

    우리는 분명 ‘영양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칼로리 높은 음식, 가공을 거듭해 영양소가 정제된 음식, 덜 건강한 영양소로 채워진 음식들도 많다. 전체적인 식습관을 점검하고 개선해야 할 사람들이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순간에 너무 극단적으로 바꾸려 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이 따른다. 좋은 결과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 해도, 어느 정도는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는데, 정작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크지 않을까.

    만약 ‘건강한 음식’이라 불리는 것들만 먹으면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때로는 건강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맛을 즐기기 위해 음식을 먹는다. 그것까지 멀리 하기 위해 고통스러울 정도로 철저해질 필요는 없다. 천천히, 조금씩 바꿔나가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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