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해보자. 만약 주변의 누군가가 정신건강의학과 또는 신경정신과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면 어떤 생각을 할 것 같은가? 똑같은 이야기를 직장 동료 정도인 사람과 친한 사람이 이야기한다면 각각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똑같을 것 같은가? 아니면 서로 다른 생각이 들 것 같은가?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일종의 ‘낙인’을 찍는 경향이 있었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지금도 그런 경향은 남아있다. 과거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으면서 속으로 ‘이상한 사람’ 또는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경향은 남아있다.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는 이야기다.
미국이나 영국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선진국’이라 인식하는 나라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정신건강을 사회적 문제의 울타리 안에 포함시켰다. 유명인사가 나서서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문제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을 것을 홍보한 사례도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울증 등 일부 정신건강 문제에 관련된 광고가 송출되고, 해당 주제를 다루는 강연이나 방송도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목소리가 대중 구석구석까지 전달되기까지는 아직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현대인에게 직면한 정신건강 문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부터 보자. 2023년 우울증 내원환자는 약 100만 명이다. 같은 해 공황장애 내원환자는 약 25만 명이다. 불안장애 약 89만 명, 조울증 약 14만 명, 강박장애 약 4만 명,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약 1만5천 명이다. 물론 이밖에도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들이 있지만, 널리 알려진 것들 위주로 찾아보았다.
이러한 통계치를 보고 혹시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별로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미 함정에 빠져있는 것이다. 통계에 반영되지 않은 ‘숨어있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적 편견과 낙인이 두렵고, 그로 인해 스스로에게도 솔직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대표적인 이유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부터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 들어가도 모습을 감추거나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건 겪어본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풍경이다.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 변화, 어디까지 왔나
최근,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용욱 교수와 예방의학교실 조민우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공황장애를 주제로 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해당 연구의 골자는 2004년부터 17년에 걸친 공황장애 진단율을 분석한 결과였다. 2010년 유명 연예인이 공황장애 투병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을 기점으로, 월 평균 공황장애 진단율이 약 9.4배 증가했다는 내용이다. 이후로 매년 인지도 있는 방송인들이 공황장애를 겪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사회적인 관심도가 가파르게 상승한 바 있다.
그것이 누구였는지는 부수적인 문제다. 아마 연예뉴스를 챙겨보거나, 유튜브 가십 영상을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고백이 뚜렷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는 데 있다.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 만큼, 사회적 인식이 어떤지에 대해 민감했을 것이다. 그걸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니까. 그런 사람들이 정신건강 문제를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자신에게 불이익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럼에도 그들은 ‘공개’를 선택했고,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그것은 매우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조기 발견, 왜 중요한가?
서울아산병원 연구팀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연 평균 신규 공황장애 환자는 인구 10만 명당 65명 수준(0.065%)이었다. 하지만 2010년 ‘포문’이 열린 이후 신규 진단 수는 꾸준히 늘었으며, 2021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610명(0.61%)까지 증가했다.
연구팀이 발표한 자료는 공황장애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다른 정신건강 질환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정신건강 관련 질환들은 조기에 발견하면 빠른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공황장애와 같기 때문이다. 증상에 따라 치료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지고, 약을 쓰더라도 부작용이 없거나 적은 약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쉬쉬하다가 증상이 심해진 뒤에서야 병원을 찾으면 치료의 선택 폭도 좁고 약물 치료에 대한 부작용 위험도 그만큼 높아진다.
게다가 대부분의 정신건강 문제는 초기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당사자가 말하지 않는 한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때 조기에 치료를 받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갈 수도 있다. 연구를 이끌었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용욱 교수는 “공황장애를 포함한 많은 정신질환이 제대로 진단받고 적절히 치료받으면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증상 때문에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하루빨리 전문의를 찾아 치료받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주된 원인은 스트레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몸은 미세한 양의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으로 인해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다양한 종류의 화학물질들이 신경계와 내분비계를 통해 신체 기능을 조절하지만, 반대로 기능 이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이 조화를 이루는 오케스트라’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병원에서 흔히 듣는 ‘스트레스 관리를 잘 하라’는 말이 이 부분과 맞닿아 있다. 스트레스 자체가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의 분비를 늘리는 것은 물론, 신체 전반적으로 다양한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관리를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실천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경계와 내분비계의 복잡한 기전을 혼자서 감당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정신건강 문제의 징후를 포착하는 것은 생각만큼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신체적으로는 피로 회복이 잘 되지 않거나, 잠을 잘 못자는 일이 반복되거나, 일상적으로 뭔가에 집중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만으로도 정신건강 문제의 증상일 수 있다.
이외에 쉽게 긴장하거나 불안함을 느끼는 경우, 부정적인 생각이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 기존에 재미있었던 무언가가 갑작스레 시들해지는 경우, 무언가에 계속 집착하게 되는 경우도 여러 정신건강 문제로 연결될 수 있는 징후들이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물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의 마음을 올바르게 들여다보는 일’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을 갖자. 오직 자신만 생각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