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쁜 일이 생겨서 마음이 매우 만족스러울 때,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흔히 부모들이 자식의 잘 먹는 모습을 볼 때, 혹은 뭔가 성취를 이뤄냈을 때도 이 말을 쓴다. 하지만 실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수 있을까?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답은 ‘가능하다’이다. 최형진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 교수와 그 연구팀이 음식을 먹지 않고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원리를 밝혀냈다. 당뇨 치료제 또는 비만 치료제의 주요 성분으로 꼽히는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이하 GLP-1)’를 활용한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한 결과다.
최형진 교수 연구팀은 GLP-1 기반 치료제가 가파른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데 비해, 정확히 뇌의 어느 부분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는지 그 원리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에 필요성을 두고 연구를 진행했다.
GLP-1은 무엇인가?
GLP-1은 본래 체내에서 자연적으로 합성되는 호르몬의 일종으로, 소장의 끝 부분에서 분비된다. GLP-1의 핵심 작용은 혈당을 떨어뜨리는 역할의 인슐린을 촉진, 그리고 혈당을 끌어올리는 역할의 글루카곤을 억제하는 것이다. 췌장의 베타 세포를 자극해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키고, 췌장의 알파 세포에서 분비되는 ‘글루카곤’을 억제한다.
또한, GLP-1은 음식물이 위에서 소장으로 이동하는 속도를 늦춰, 식후 혈당 상승 속도를 완화하고 포만감이 보다 오래 지속되도록 한다. 이밖에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는 역할도 한다.
최형진 교수팀이 연구한 내용은, 동물실험을 통해 GLP-1이 뇌의 어느 영역에 작용하는지를 조사하여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 GLP-1의 수용체는 ‘등쪽 안쪽 시상하부 신경핵(Dorsomedial Hypothalamus, 이하 DMH)’에 분포해있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또한, 연구팀은 광유전학을 이용해 DMH에 있는 GLP-1 수용체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하면 쥐가 먹이를 먹는 것을 멈추고, 해당 수용체를 인위적으로 억제하면 더 오랫동안 식사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음식을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연구팀은 뉴런 속 칼슘이온을 이용해 뉴런의 신호를 관측할 수 있는 ‘칼슘 이미징(Calcium imaging)’ 기법으로 여기서 더 나아간 결론을 얻었다. 쥐가 어떤 장소 또는 행동이 먹이와 연관돼 있다는 것을 학습한 뒤에는, 음식을 인지한 순간부터 GLP-1 수용체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즉, ‘이 장소에 가면 음식이 있다’, ‘이 행동을 하면 음식을 먹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인지한 뒤로는 음식을 보는 순간 식욕 억제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 음식을 먹지 않고도 배부름을 느낀다는 것이다.
최형진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뇌의 ‘배부름 중추’와 인지과학에 대한 기초과학적 발견인 동시에 새로운 비만약 개발을 위한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IF(Impact Factor) 56.9의 권위 있는 글로벌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금일(28일) 온라인 게재됐다.
최 교수의 말대로 이번 연구결과는 과학적으로 무척 의미 있는 발견임에 분명하다. 특히 ‘식탐’으로 인해 매 끼니마다 과식을 하거나, 수시로 간식을 섭취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기전을 이용하면 과잉 에너지 섭취를 예방하는데 크나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만 치료제, ‘식이 억제’ 용도로 남용되지 않기를
비만 치료제가 GLP-1 호르몬과 그 수용체 사이에서 어떤 메커니즘을 보이는지는 규명됐다. 다만, 여기서 살펴보아야 할 포인트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비만 치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GLP-1 기반 비만 치료제는 과도한 음식 섭취로 인해 비만이나 과체중에 이른 사람들, 그중에서도 식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을 경시하고 효능에만 집중한다면, ‘살 빼고 싶으면 GLP-1 비만 치료제를 쓰면 된다’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과식은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꼭 필요한 만큼의 음식조차 먹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건강에 위협이 된다. 과도한 다이어트 강박으로 인해, 비만 치료제를 ‘식이 억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데 대한 경고다. 유의미한 발견이 계속 유의미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지나치게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