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 세포는 어떤 면에서 보면 바이러스와 같다. 치료에 노출됐을 때 세포 중 일부가 생존하고 증식하면서 저항성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특정 약물을 회피하거나 세포 성장 경로를 비틀어 약물에 의한 영향을 회피하는 등 치료 과정을 회피하는 종류도 있지만 이 또한 암 세포의 진화 결과라 할 수 있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연구팀은 국제적 협력을 토대로 ‘새로운 암 정복 전략’을 탐구하고 있다. 이는 농업에서 해충을 관리하는 전략을 기반으로 암 세포를 관리하는 방법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해충 관리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암 연구 및 암 치료의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 암 학회(AACR)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Cancer Research」에 게재된 10가지 원칙을 살펴본다.
환경에 맞게 ‘진화’하는 암 세포
우선 기본적인 목적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이 방법은 기본적으로 ‘완치 가능성이 낮은 경우, 완전한 근절이 아닌 만성질환 수준으로 암을 관리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즉, 기존의 암 치료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향에서의 접근이다. 약물에 대한 내성을 제어함으로써 환자들의 생존율을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방법론에 대한 연구는 ‘암 세포의 약물 저항’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00년대 중반에 기존의 암 치료제에 저항성을 가진 암 세포가 발견됐다. 일부 저항성 세포가 생존하면서 다시 암이 재발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후 암 세포의 저항성을 초점에 둔 접근법과 치료 전략이 학계에서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됐다.
암 세포의 저항성은 ‘생물의 진화 과정’과 맥락이 같다. 어떤 환경에서 살아남기에 더욱 적합한 쪽만 남고 나머지는 도태되는 것이 진화의 과정이다. 이처럼 암 세포 역시 특정 약물에 저항성을 가진 개체가 생존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항성을 가진 암 세포가 지배적인 종류가 되며, 이에 따라 기존의 약물은 효력을 잃어가게 된다.
연구팀은 암 세포가 약물에 내성을 갖추며 진화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했다. 이에 따라 농업에서 해충을 관리하기 위한 기술적 방법들을 살펴보았다. 생물학적, 화학적, 기계적 통제방법을 합쳐 ‘지속가능한 관리’를 추구하는 방식을 토대로 암 연구 및 치료법을 혁신하고자 했다.
해충 관리법에서 응용한 ‘적응 치료’ 전략
해충 관리법을 토대로 수립한 암 치료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환자의 치료 환경을 점검하고, ‘암 세포 성장에 불리한 조건’이 되도록 함으로써 예방을 최우선으로 한다. ▲둘째. 체액이나 혈액을 채취해 검사하는 ‘액체 생검’을 적용해, 종양의 진행 상황 및 저항성 지표를 실시간 추적할 수 있도록 한다.
▲셋째. 특정 약물의 임계치를 엄격하게 확인하고 반드시 필요할 때만 사용하도록 한다. ▲넷째. 종양의 반응에 따라 치료법을 바꾸고 약물 용량을 조정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다섯째. 환자에게 가해지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작용이 적고 독성이 낮은 치료법을 선택한다. ▲여섯째. 수술 및 면역요법 등을 총동원해 독성 약물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화하는 비화학적 접근을 전제로 한다.
▲일곱째. 암 세포의 저항성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약물은 가능한 한 가장 적은 용량을 사용한다. ▲여덟째. 약물은 작용 기전에 따라 분류하고, 유사한 기전을 가진 약물은 반복 사용하지 않도록 조절한다.
▲아홉째. 질병의 완전한 근절보다 ‘생존과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춘다. ▲열째. 예측 모델을 사용해 종양의 패턴을 예측하고, 그에 따라 치료 계획을 정교하게 조정한다. 연구팀에 따르면 현재 일부 임상의들은 이 전략을 ‘적응 치료(adaptive therapy)’에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법은 단일 약물 또는 여러 종류의 약물을 주로 사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내성이나 저항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접근법의 임상시험을 위해,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이 있지만 병기가 진행될수록 경과가 좋지 않은 대장암이 적합하다고 언급했다.
개인 맞춤형 의료와 발맞출 수 있을 것
당장은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연구팀은 이러한 접근법이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기대한다. 그들은 ‘개인 맞춤형 의료’가 발전하고 있는 지금이 적기라고 이야기한다. 10가지 원칙 중 지속적인 액체 생검 및 유전자 프로파일링이 개인 맞춤형 의료와 맥락을 같이 한다는 설명이다.
반복되는 검사 및 분석은 체액 내 암 바이오마커를 실시간에 가깝게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치료방법을 바꿀 적절한 시기를 알 수 있게 하고, 약물에 의한 독성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는 암 세포 돌연변이의 발생을 모니터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암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더욱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이 연구에는 애리조나 주립대학 외에도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캘리포니아 대학, 스위스 로잔 대학, 튀르키예 이스탄불 대학 등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대학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암 연구소, 메이요 클리닉, 영국 로열 마스든 병원 등 연구기관 및 의료기관도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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