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는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중심기관이 심장이라면, 뇌는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중심기관이라 할 수 있다. 뇌는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관이자, 여전히 풀리지 않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기관이기도 하다.
높은 중요성으로 인해, 뇌는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여럿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 BBB)이다. 혈뇌장벽은 혈관과 뇌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으로, 뇌를 보호하기 위한 자연 보호막이라 할 수 있다.
혈뇌장벽은 뇌의 보호자 역할을 하지만, 때때로 뇌에 필요한 것들조차 막아버리기도 한다. 치료 목적으로 주입된 약물이 대표적인 예다. 이를 위해 혈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제시됐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 미국의 한 의과대학에서 또다른 혈뇌장벽 통과 방법에 대한 연구 결과를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ature Biotechnology)」에 게재했다.
혈뇌장벽이 약물을 막는 이유
혈관은 우리 몸의 보급선 역할을 한다. 병원균이나 해로운 물질이 침투하기 가장 쉬운 경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뇌는 혈뇌장벽을 통해 혈관으로 운반돼 온 물질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킨다. 해로운 물질, 정확히는 ‘해롭다고 판단한 모든 것’이 뇌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검문하는 셈이다.
일반적인 상태를 기준으로 본다면, 혈뇌장벽은 체내 대사를 통해 만들어진 물질은 통과시키고, 완성된 형태로 주입된 물질은 차단한다. 이 때문에 문제가 되는 부분 중 하나는, 뇌에 생긴 병증을 치료하기 위해 투여한 약물도 차단한다는 것이다.
혈뇌장벽은 뇌의 모세혈관을 구성하는 내피세포로 구성돼 있다. 세포들이 ‘밀착 결합’ 방식으로 매우 촘촘하게 연결돼 있어 물질의 통과를 막는 방식이다. 여기에 아교세포와 미세아교세포 등에 의해 보완되면서 더욱 견고한 방어 능력을 갖게 된다.
보통 약물들은 상대적으로 분자 구조가 크다. 이 때문에 촘촘하게 구성된 혈뇌장벽을 통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400달톤(Da) 이상의 분자가 포함돼 있는 물질은 혈뇌장벽을 통과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는, 혈뇌장벽에 존재하는 효소로 인해 약물의 일부 성분들이 대사돼 버려, 통과하더라도 본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혈뇌장벽 통과를 위한 시도들
필요에 따라 혈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 구조적 특성을 고려한 여러 우회방법이 고안됐다. 먼저 약물을 화학적으로 변형시켜 혈뇌장벽을 통과하기 쉬운 형태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다만 이는 약물 종류에 따라 화학적 변형이 불가한 경우도 있었고, 변형된 약물이 본래 효능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전기적인 자극을 가해 혈뇌장벽의 투과성을 일시적으로 높이는 방법도 있다. 한순간 투과성을 높여서 약물이 통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비침습적인 방법으로 각광받았지만, 이를 통해 혈뇌장벽에 장기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밖에도 혈뇌장벽의 세포 사이를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나노입자 크기로 약물을 만드는 방법, 혈뇌장벽 투과율이 높은 지질 구조(리포솜)를 사용해 약물을 통과시키는 방법 등도 연구되고 있는 방법론이다. 이들 모두 획기적인 방법이지만 안전성 문제 및 제조 과정의 복잡함이 한계로 남았다.
‘자연스러운 통과’ 가능성 제시
미국 뉴욕에 위치한 마운트 시나이 아이칸 의과대학의 연구팀은 기존의 방법들과 다른 방향에서 치료 목적의 약물을 뇌 조직에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혈뇌장벽 교차 접합체(BBB Cross-Connecting, BCC) 시스템’이라고 이름 붙인 이 방법은 ‘투과성 세포작용’이라는 생물학적 과정을 활용한다. 치료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형 분자를 정맥 주사로 주입한 다음, BBB의 내피세포로 하여금 해당 물질을 포획해 뇌로 전달하게끔 하는 방식이다.
본래 일정 크기 이상의 분자는 혈뇌장벽의 촘촘한 틈새를 통과할 수 없다. BCC 시스템에서는 내피세포들이 결합한 틈새가 아닌, 내피세포의 세포막을 통해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방법을 사용했다. 내피세포 자체와 상호작용함으로써 정당하게 통과하게끔 만들어진 것이다.
연구팀은 ‘BCC10’이라고 이름 지은 화합물을 기반으로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특정 유전자 발현을 조절 또는 억제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설계된 DNA 또는 RNA 조각)를 조합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뇌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의 활동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알츠하이머,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ALS)과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함으로써 해당 질환의 발생 위험을 줄인 것이다.
주요 장기 손상 없어
BCC 시스템은 쥐 모델 실험 결과 이 과정에서 다른 주요 장기에 손상을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약물에 변형을 주지도, 혈뇌장벽에 자극을 주지도 않으며, 혈뇌장벽 내피세포의 대사 과정을 활용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자연스럽다.
이는 ‘BCC 시스템’을 하나의 플랫폼처럼 사용함으로써, 치료 목적으로 투여된 약물이 무엇이든 혈뇌장벽을 자연스럽게 통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이 방법은 향후 다양한 뇌 질환에 대한 치료법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연구팀은 향후 대형 동물 모델을 대상으로 추가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쥐 모델을 대상으로 한 안전성과 효능은 입증됐기 때문에 단계별로 진행해가겠다는 입장이다. 뇌 질환 치료 플랫폼으로서 BCC를 반복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연구팀의 최종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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