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만은 질병’이라는 명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관점을 가진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대략 몇 개월 정도? 하지만 그 길지 않은 시간 사이에 비만으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폭넓게 접하다 보니, 이제는 비만은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질환으로 인식하게 됐다.
사람에 따라서는 한 술 더 떠 비만을 ‘21세기 전염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실제로 비만이 전염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정도로 확산 속도가 빠르고 비만인 인구가 많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비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중요하다. 그간 비만과 다른 대사성 질환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언급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비만이 뇌 기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알아보고자 한다.
비만, 영양 섭취에 대한 뇌 반응 느려져
미국 예일 대학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병원은 정상 체중에 해당하는 참가자 30명과 비만 기준에 해당하는 참가자 30명을 모집해 연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네이처 메타볼리즘(Nature Metabolism)」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의 위에 포도당과 지방을 주입하고, 동시에 자기공명영상(MRI)을 사용해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측정했다. 또한, 단일광자 방출 컴퓨터 단층촬영(SPECT) 스캔을 통해 도파민 방출량을 살펴보았다.
연구에 따르면, 비만인 사람들은 포도당과 지방을 직접 위에 투여했을 때, 그 반응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영양소를 섭취했다’라는 신호를 뇌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또한, 비만인 사람들은 음식 섭취와 관련해 도파민의 방출이 줄어드는 현상을 보였다.
이후 12주에 걸친 통제로 다이어트를 진행한 다음, 다시 같은 과정을 진행했다. 체중이 약 10% 감소했음에도 비만이었던 대상자들의 뇌 반응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는 뇌가 비만 상태에 장기적으로 적응하게 된다는 점, 그리고 체중을 감량하더라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비만 - 염증 - 뇌 기능 변화
이는 비만으로 인해 뇌 기능에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는 ‘기능적인 손상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체지방량이 과도할 경우, 몸은 염증이 늘어나기 쉬운 상태가 된다. 지방 세포가 비대해지면서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방출하기 때문이다. 비대해진 지방 세포는 면역 세포를 끌어들이게 되고, 이들이 염증 유발 물질을 더 많이 방출하면서 염증이 악화된다.
본래 염증은 면역계에서 보내는 경보 발령과 같다. ‘이곳에 문제가 생겼으니 원인을 찾아 제거하고 조직을 복구하라’는 신호다. 하지만 비만의 경우 체내 대사에 여러 문제를 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염증의 복구 과정에 방해를 받게 되고, 염증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염증이 생기는 일이 반복된다. 이른바 ‘만성 염증’ 상태다.
온몸으로 퍼져나간 염증은 신체 모든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만, 특히 뇌에서의 문제를 눈여겨봐야 한다. 염증이 혈뇌장벽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혈류를 타고 온 유해 물질이 뇌로 침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염증 물질, 산화 부산물, 세포 잔해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신경세포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고 손상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 신경세포들이 연결된 시냅스의 가소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기억력이나 학습 능력 등 해당 시냅스가 담당하는 기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신경계에 염증이 발생하게 되면 신경을 타고 퍼져나간 염증 반응이 온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비만으로 인해 당뇨 증상이 따라오는 것은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곳에 염증 반응이 전달되면서 인슐린 저항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도파민 감소, 폭식으로 이어질 수 있어
비만으로 인한 만성 염증이 뇌에 미칠 수 있는 영향 중에는, 도파민 수용체의 기능을 저하시키는 것도 있다. 비만으로 인해 도파민 수치가 감소하는 것은 어떤 문제로 이어질까?
본래 도파민은 뇌의 ‘보상 시스템’에서 핵심이 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라는 행위를 예로 들어보자. 도파민의 작용으로 인해 맛있는 음식을 원하게 되고, 그것을 먹었을 때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때 기쁨을 느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다음에 다시 그 음식을 원하게 하는 동기부여의 역할도 한다.
하지만 도파민 수치가 감소하게 되면 이 시스템이 둔해진다. 비만에 초점을 맞춰서 살펴보면, 과식과 그로 인한 만족감이 반복되면서 도파민이 적응해버린 것이다. 이전까지는 즐거웠던 일들이 별다른 쾌감을 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정신건강 면에서도 중요한 문제지만, 비만 상태를 지속하고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적은 수준의 식사로는 도파민이 충분히 방출되지 못하므로, 더 많은 음식을 원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식 - 도파민 감소 - 폭식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비만 연구, 뇌 기능에 관한 시각도 중요
비만을 질환으로 인식하는 시각이 강화되면서, 이를 주제로 한 연구가 속속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비만으로 인한 뇌 기능의 변화 역시 기존의 관점이라면 시도하지 못했거나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도파민 기능 저하,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 폭식 등 극단적 행동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면서, 비만은 신체적 대사 문제 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향후 개발&개선될 비만 치료 및 예방법에는 뇌 기능 회복을 목표로 하는 관점도 반드시 고려돼야 할 것이다. 이번 연구는 그 작업의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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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씹는 습관, 비만 탈출의 시작점 될 수 있어
‘음식물 꼭꼭 잘 씹어 먹기’는 어릴 적부터 마치 주문처럼 듣게 되는 말이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어릴 때는 그 말을 잘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달라진다. 여전히 습관처럼 잘 씹어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대로 씹기도 전에 꿀꺽 삼키는 사람도 흔하다.현대인들의 점심시간은 늘 빠듯하다. 그 때문인지 식사를 빨리 마치는 사람을 부럽게 보는 경우도 꽤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식사를 빨리 마칠 수 있는 이유는 보통 둘 중 하나다. 적게 먹거나, 아니면 덜 씹고 먹거나. 적게 먹는 것도 분명 나름의 문제점이 -
비대해진 지방 세포 회복, 당뇨 개선에 효과
비만을 단순한 체중 증가가 아닌, 질병의 한 종류로 보는 관점이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과 마찬가지로, 비만 역시 다른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대사 관련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비만으로 인해 유발될 수 있는 여러 질환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2형 당뇨일 것이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특정 약물이 본래 당뇨 치료제로서 개발됐지만, 비만 치료제로도 사용될 만큼 두 질환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당뇨&비만 치료제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식욕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이다. 이와 -
콜레스테롤 흡수 줄여주는 파이토스테롤
농촌진흥청(청장 권재한)은 숙명여자대학교, 고려대학교와 함께 한국인이 많이 섭취하는 식품을 대상으로 15종의 ‘파이토스테롤’을 분리해 분석하고 정보 구축에 나섰다. 콜레스테롤 흡수 줄여주는 파이토스테롤파이토스테롤(Phytosterol)이란 식물에서 자연 생성되는 화합물인 ‘트리테르펜(Triterpenes)’ 계통의 물질이다. ‘스테롤’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익숙한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바로 콜레스테롤이다. 실제로 파이토스테롤은 콜레스테롤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다만, 동물성 식품에서도 발견되는 콜레스테롤과 달리, 파이토스테롤은 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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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고려한 식단을 유지하고, 섭취량을 조절하며, 운동을 조금씩 일상화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1개월 이내에 조금씩 반응이 나타날 것이다. 일단 몸이 가뿐한 느낌이 들 수 있고, 혹은 거울 속에서 생기가 느껴지는 기분일 수도 있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객관적 증거’다.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체중’이다. 사실 체중은 건강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체중계의 숫자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심리를 가볍게 여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건강하게 먹고 운동을 하고 있음에도 체중이 늘어나거나 오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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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세포가 염증을 만든다고 말하는 이유, 건강을 위해 체지방을 덜어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비만 측정 방법, ‘허리-키 비율’ 활용 권장
지난 1월, 랜싯(Lancet)에서 위원회를 구성하고 비만 진단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밝힌 바 있다. 기존에 널리 사용되던 BMI 대신 보다 정확한 비만 측정 방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그에 대한 실제 비교연구 사례가 제기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