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기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것은 사실 무척 식상할 수 있는 주제다. ‘건강’이라는 키워드와 연관짓는 순간, 대부분은 그리 긍정적인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눈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블루라이트부터, 그로 인한 수면 품질 저하, 더 나아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까지 거의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편향돼 있다.
과거에는 컴퓨터가 그랬고, 현재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휴대용 기기가 주 타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기기는 우리 삶에서 멀어질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더 가까워질 것이고,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질 것이라 예상한다.
그렇다면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멀리 하라’, ‘절제하라’와 같이 현실성이 부족한 외침 대신, 보다 실용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디지털 기기를 통해 무엇을 하는지에 주목하라’는 관점의 인지심리학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사용 시간’이 아닌 ‘사용 목적’이 중요
최근 글로벌 미디어 ‘더 컨버세이션’에는 디지털 기기의 사용시간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 방식을 지적하는 글이 게재됐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건강과 인적자원 개발 분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리난다 샤레하의 글이다.
샤레하는 2020년 수행됐던 「‘화면 시간’의 개념 및 방법론적 혼란」이라는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여기서 말하는 ‘화면 시간’이란, 디지털 기기의 화면이 켜져 있는 시간, 즉 ‘사용 시간’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 화면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염두에 두지 않는 접근법이다.
디지털이라는 방식을 빌려 전달되는 콘텐츠는 무수히 많다. 그 모든 콘텐츠가 하나같이 똑같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샤레하는 이런 당연한 사실을 근거로, 디지털 기기를 ‘얼마나 사용하느냐가 아닌,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샤레하는 기존의 ‘화면 시간’을 측정하는 항목을 세분화하고, 각각의 속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화면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라면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하거나 게임을 하는 중일 수 있다. 반면 필요한 정보를 탐색하는 경우라면 화면이 수시로 바뀌지만 일정한 맥락을 형성할 것이다.
이에 대한 세부적인 데이터가 확보된다면, 기존의 건강 관련 문제들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를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디지털 활동이 이롭고, 잠재적으로 해로울 수 있는지’를 더 잘 파악하고, 올바른 디지털 기기 사용 습관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용도에 따라 달라지는 정신건강 영향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지금 30~40대 정도의 사람들만 해도, 대부분 휴대폰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대를 경험했다. 이후 휴대폰이 보급된 이후로도 대부분은 전화와 문자 정도가 일반적인 기능이었다. 불과 십수 년 사이에 지금과 같은 첨단 기기가 됐고,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의 다양성은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스마트폰을 얼마나 사용했는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디지털 활동을 얼마나 하느냐를 구분하는 것이 필수인 이유다. 각각의 활동이 본질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규명하고, 그것들이 인지 기능과 정신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야 한다.
샤레하는 진행 중인 연구에서 디지털 기기의 사용 목적을 ‘교육적 사용’, ‘업무 목적 사용’, ‘사회적 상호작용’, ‘엔터테인먼트’의 네 가지로 분류했다. 이는 정신건강 측면에 초점을 맞춘 분류로, 각각의 목적에 따라 정신적, 심리적으로 다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교육 목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온라인 강의를 듣는다거나 관심 있는 분야의 최신 기사를 읽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문제 해결 능력, 비판적 사고 능력과 같은 인지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동기 부여, 자기 조절 및 자기 통제를 강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다만, 익히 지적되는 것처럼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학습은 전통적인 방법에 비해 주의를 산만하게 할 우려가 있다. 구독 중인 서비스나 SNS로부터 날아오는 푸시 알림 등, 언제든지 다른 콘텐츠로 넘어갈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 목적 사용의 경우, 생산성을 높이는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업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장시간 화면에 노출될 수 있고, 멀티 태스킹으로 인해 스트레스, 불안, 인지적 피로 등의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사회적 상호작용은 SNS가 대표적이다. 이런 용도는 오프라인에서 부족한 사회적 연결을 촉진한다.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경우라면 온라인을 통한 상호작용은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무한하게 이어지는 피드나 짧은 영상의 행렬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통제력을 잃고 사용하게 될 우려가 있다.
마지막으로 엔터테인먼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기본적으로 심리적 이완과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있다. 마음챙김 앱이나 명상 프로그램을 활용해 심신을 다스리는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고, 생성형 AI 도구 등을 사용하며 뭔가를 만드는 활동을 통해 적극적인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다만, 디지털 기기를 통한 엔터테인먼트 활동은 현실에서의 신체 활동을 완벽히 대체할 수 없다. 그러면서 ‘재미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도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이는 현실에서 몸을 움직일 시간을 잡아먹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신체적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
결론은 ‘양보다 질’이다
이처럼 겉으로 보면 똑같이 ‘디지털 기기 사용’이지만, 그 안에서 이뤄지는 활동은 확연히 다르다. 따라서 단순히 사용 시간만을 놓고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논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물론 디지털 기기를 통해 어떤 행위를 하든, ‘화면을 통한다’라는 본질은 같기 때문에 블루라이트 등으로 인한 눈 건강에의 영향은 엇비슷하게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수면 품질이나 기타 정신건강에 대한 영향은 좀 더 세부적으로 나누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수면 품질의 경우 블루라이트로 인한 부작용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하지만 그 사용 목적이 명상 앱과 같이 수면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면, 조금 다른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세부적인 설명은 길었지만, 지향하는 결론은 명확하다.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양적 측면’이 아닌 ‘질적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 화면을 혼자서 바라보는지, 가족과 함께 보고 있는지. 혹은 화면 속에서 긍정적 경험을 하고 있는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충동적이고 수동적으로 화면을 조작하고 있는지,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등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스마트폰(컴퓨터) 좀 그만해라!”라고 말하기 전에, 그것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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