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으로 기억을 조절해 PTSD를 비롯한 기억 관련 질환을 완화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허원도 교수와 그 연구팀이 밝혀낸 ‘빛을 사용해 과도한 기억 형성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에 의한 결과다.
연구의 핵심은 이렇다. 기억의 형성 단계에서 특정 단백질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빛을 사용해 생체 조직의 세포를 조절하는 ‘광유전학 기술’로 이 단백질을 정밀하게 제어함으로써, 기억을 활성화하거나 비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의 형성과 소멸
우리는 일상에서 오감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얻는다. 경험한 것들은 새로운 기억이 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이 과정은 뇌의 ‘해마(hippocampus)’라는 부위에서 관장한다. 해마는 감각 정보와 경험을 받아들여 통합함으로써 기억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바꾸거나 특정 위치, 장소를 기억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마는 양성 신호(흥분성 신호)와 음성 신호(억제성 신호)가 균형을 맞춰가며 기억을 유지한다. 만약 양성 신호를 조절하는 인자에 문제가 생기면 기억 형성에 장애가 발생한다. 즉, 새로운 경험을 하더라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반대로 음성 신호를 조절하는 인자에 문제가 생기면 기억 소멸에 장애가 발생한다. 즉, 특정 기억을 잊지 못하고 계속 되풀이되며 과도한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과도한 기억’으로 인한 정신질환
어떤 기억이 잊혀지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문제, 대표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가 있다. 어떤 사건이 세부사항까지 뇌에 강하게 각인됨으로써, 기억이 매우 생생하게 남게 되는 증상이다. 이들은 종종 그 상황을 다시 겪는 것처럼 느끼는 ‘플래시백’ 증상으로 고통 받는다.
이외에 특정 생각이나 기억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강박 장애(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OCD)’, 여러 가지 작은 일들을 과도하게 걱정하는 ‘범불안 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 GAD)’ 등도 기억이 소멸되지 않아 발생할 수 있는 정신적 문제들이다.
광유전학 기술을 활용한 기억 통제
허원도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광유전학 기술은 ‘빛으로 특정 단백질을 활성화 또는 비활성화’하는 원리다. 연구팀은 세포 내 신호를 전달하는 PLCβ1 단백질이 기억의 형성과 소멸을 조절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 그리고 이 단백질이 해마에서 기억 억제자로 작용함으로써 과도한 기억 형성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이와 관련한 동물실험을 진행했으며, 이를 통해 PLCβ1 단백질을 결핍시킨 쥐는 과도한 기억을 형성하며 공포 반응이 증가한다는 것, 반대로 해당 단백질을 활성화시킨 쥐는 과도한 공포 반응이 억제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PLCβ1 단백질 결핍으로 나타난 공포 반응은 PTSD 환자가 보이는 증상과 유사하다. 마찬가지로 PLCβ1 단백질을 활성화시키면 그러한 공포 반응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이 내린 결론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PLCβ1 단백질이 기억 형성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 입증됐다. 한편, 광유전학 기술을 통한 PLCβ1 단백질 제어가 정신질환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렸다.
이번 연구는 생명과학과 이진수 박사가 제 1저자로서 수행했으며, 허원도 교수를 교신저자로 하여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s Advances’에 제출됐다. 2024년 7월호 인쇄판에 실릴 예정이며, 온라인판에는 지난 6월 28일(금) 게재된 바 있다.


-
정신건강은 사회적 문제, 2024년 우리의 현 주소는?
생각해보자. 만약 주변의 누군가가 정신건강의학과 또는 신경정신과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면 어떤 생각을 할 것 같은가? 똑같은 이야기를 직장 동료 정도인 사람과 친한 사람이 이야기한다면 각각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똑같을 것 같은가? 아니면 서로 다른 생각이 들 것 같은가?우리나라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일종의 ‘낙인’을 찍는 경향이 있었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지금도 그런 경향은 남아있다. 과거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으면서 속으로 ‘이상한 사람 -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한 포인트, ‘회복 탄력성’을 기르는 방법
‘요즘 시대’는 그야말로 스트레스 시대라 할 만하다. 현대인들은 그야말로 매일같이 스트레스를 받고 그만큼 지치고 다시 일어나 스트레스를 향해 뛰어들어야 하는 삶을 산다. 이런 쳇바퀴 같은 삶을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지만, 언제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에 가로막혀 좌절한다.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회복 탄력성’이다. 회복 탄력성이란 살아가며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한껏 소진된 후에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누구나 힘든 일을 겪고 스트 -
“다시 봄, 안녕 트라우마”… 올바른 트라우마 극복을 위하여
국립정신건강센터(센터장 곽영숙)에서 금일(22일)부터 오는 금요일(26일)까지 ‘2024 트라우마 치유주간’을 진행한다.이번 치유주간의 표어는 ‘다시 봄, 안녕 트라우마’로 정해졌다. 표어는 ‘봄’과 ‘안녕’이라는 단어를 중의적으로 표현해 만들었다.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와 회복을 함께 나누는 기회를 확대하자는 의도다. 봄은 ‘다시 봄이 찾아왔다’라는 뜻과 ‘자신의 마음을 다시 돌아보다’라는 뜻을 담았으며, 안녕은 ‘트라우마를 떠나보낸다’라는 뜻과 ‘트라우마를 제대로 알기 위해 맞이하다’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트라우마란 무엇인가?트라 -
‘진단’부터 ‘관리’까지… 뷰노, AI 의료기기 활성화 이끈다
의료 인공지능 기업 ‘뷰노(Vuno)’가 15일(월) 중앙대학교병원과 양해각서(Memorandum of Understanding, 이하 MOU)를 체결했다. 이번 MOU는 ‘미래형 의료 서비스’에 대한 공동연구 및 학술 연구사업에 대한 협력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뷰노는 중앙대학교병원과 협력하여 의료 임상 현장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여 연 1건 이상 공동 연구 성과를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뷰노의 인공지능 솔루션 현황뷰노는 2014년 설립한 이래 “View the Invisible, Know the Unknown”이라는 -
조혈모세포 이식 후 자가면역, 줄기세포로 완화할 수 있어
혈액암 환자에 대한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등장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조석구 교수 연구팀은 ‘골수 유래 중간엽 줄기세포’를 활용한 임상연구를 통해, 조혈모세포 이식 후 면역억제제가 듣지 않는 환자들에게 효과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의 가능성을 알렸다.혈액암 환자에게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진행할 경우, 공여자의 면역세포(T세포)가 환자의 정상세포를 공격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식 후 최대 70%의 환자가 겪는 이 증상을 이식편대숙주질환(Graft-versus-Host Disease, GVHD) -
노화와 질병의 원인, ‘세포’ 수준을 넘은 더 근본적인 원리 발견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성장한다. 세포는 분열 과정에서 자신의 DNA를 ‘복제’한다. 본래라면 복제는 기존의 것을 똑같이 가져와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과정에서 종종 오류가 발생한다. 이를 가리켜 ‘DNA 돌연변이’라 부른다.돌연변이는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다. 부모를 통해 유전되는 경우도 있고, 본인의 체내에서 이루어지는 세포 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밖에 DNA에 발생한 손상이 축적되면서 변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특정 화학물질 또는 자외선, 방사선 등에 노출되거나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
‘마스크 없는 삶’ 되찾을 수 있을까? 대기 중 이산화탄소 처리 기술 신규 개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증가해왔다. 최근 몇 년간 매년 2~3ppm 정도씩 증가해왔으며, 2023년 기준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420ppm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지구 평균 기온은 약 1.2도 상승했으며, 이에 따라 해수면 상승, 생태계 파괴, 이상기후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고동연 교수 연구팀이 29일(월)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술은 연구팀 소속 김규남 박사과정의 창업기업 소브(Sorv, 대표 김규남)를 -
태반 추출물 약침, PTSD 일부 증상에 효과 있어
태반 추출물을 활용한 약침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이하 PTSD)로 인해 나타나는 일부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이하 한의학연) 연구팀은 ‘자하거(한방에서 태반을 지칭하는 말)’ 약침을 사용해 이와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이는 기존 PTSD 환자들에게 항우울제 기반 치료를 해왔던 현실과 달리, 보다 최적화된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PTSD, 기존 치료의 한계점PTSD는 심각한 신체적 손상 또는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는 사건·사고로 인해 발생한다. 예를 들어,
